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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25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위안의 철학 5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위안의 철학

Posted 2008. 1. 25. 23:30 by surfysea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몽테뉴 (p.5)


처음 맞이한 대학 생활에 대한 흥분과 실망이 뒤섞여,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대학 1학년 어느 날. 나는 한 일간지 인터넷 담당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른바 알바생 '막내'이다보니 저녁에 신문 초판이 나오면 신문 뭉치를 1층에 내려가서 가져와야 했다. 이 신문을 사무실의 각 직원들에게 배분하는 것 까지 마치고 이제 본연의 업무로 돌아오면, 웹에 신문기사와 이미지를 포스팅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종이신문의 이미지와 대조하여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북섹션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날 일이 끝나자마자 근처 서점에 들러 구입한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새 책을 소중하게 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 나는 정신없이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이 젊은 철학자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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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1969년생.


어느새 나는 군대에 다녀오고, 정신없는 복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공서적을 사려고 인터넷서점에서 이것저것 보던 중,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정명진 역, 생각의나무, 2005)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말이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전공서적과 같이 주문했으나, 학업의 압박(정확하게 말하면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때문에 책은 한참을 책꽂이에만 꽂혀 있다가 이제야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사실은 대학 졸업반임에도 일이 뭔가 계획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나의 현실에, 알랭 드 보통이 나에게 어떤 암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는 것이 맞겠다. 마치 대학 1학년 때의 어떤 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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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인터넷교보문고


surfysea의 두 번째 포스팅 100(철학)편에서 소개하는 이 책은 예전에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이건 개정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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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리패키징 앨범을 자주 내서
초기에 앨범을 구입한 팬들을
슬프게 하는 가수도 있다.


이 책은 서양 철학 전반을 훑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저자가 '위안의 철학'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몇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며 에세이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1. 소크라테스: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2. 에피쿠로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3. 세네카: 좌절에 대한 위안
  4. 몽테뉴: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5. 쇼펜하우어: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6. 니체: 곤경에 대한 위안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좌절을 설명하는 세네카의 사전" 중 "불공평" 부분이다. 드 보통은 세네카(우리가 윤리시간에 배웠던 스토아학파의 일원이다)의 저작 전편에서 한 가지 관념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은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한데다 또 납득할 수 있는 좌절에 봉착한 경우에는 잘 참아 넘기는 반면, 예상하지 못한 좌절을 겪으면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철학의 임무가 우리의 바람이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재앙으로 고통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리둥절해하며 그 사건을 정의의 도식으로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부조리하게 비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결국엔 나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 곳에 자리잡는 한편, 자신은 진정으로 말하건대 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의의 집행이 부른 대실패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낀다.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정의롭다는 줄기찬 믿음은 이 세상에는 불공평이 있어왔다는 바로 그 불만 속에 암시되어 있다. (p.148)


저자는 인용 부분과 같은 세네카의 도식을 "운명의 여신은 허리케인과 같은 도덕적 무분별함으로 해(害)를 입힌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센스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누구든 적어도 한 두 꼭지 이상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문이 고도로 전문화된 근대에, 철학은 여러 분과학문들을 탄생시켰지만 막상 자신의 역할은 한없이 축소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 초년생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설치던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책 만큼 철학이라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위안을 주고 피부에 와 닿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전에 얼마간 이론적인 공부(그래봐야 초보적인 수준이지만)를 했던 것이 이러한 논의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현실의 삶과 맞닿아있어야 그 본래의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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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뉴시스


문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진부한 속담이 새삼 떠올랐다. 어떤 것에 대해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일수록 배운 것을 써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의심(소크라테스적으로 "자신아 무지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자기의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고들 한다. 그러니 나 같은 얼치기일수록, 자기주장만 강해지고 고집만 세지는 것이다. 이는 일면의 이론으로 사람을 재단하려 해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경계짓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사실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절대자'가 된 양 행동한다.

이런 사람들이 치닫는 극단적인 결말은 "연애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왜냐면 연애와 같은 관계에서 '교조적인 정치적 올바름'이 항상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가치의 발현은 이론의 틀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관계 속에 깊이 관여하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주장만 하는 것은, 원치 않는 훈수로만 들릴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