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현대 사회의 기본원리를 크게 나누어 본다면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원리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첨단 과학기술이 더해져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추동해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혁명을 통해, 과학기술은 몇 번의 큰 과학혁명 - 패러다임의 전환 - 을 통해 이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장원리를 기반으로 한 이 사회의 자본주의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혹자는 시장은 인류의 역사와 언제나 함께해 왔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은 중세의 상업자본주의에서 해외 무역과 같은 요소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산업자본주의로, 이후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적 예정설과 금욕주의가 자본주의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른 설명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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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좀바르트 지음 | 문예출판사 펴냄
성과 사랑,연애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사치의 경제사적의미와 사회문화사를 파악한 저서. 십자군 전쟁이후 변화된 남녀관계가 지배계급의 생활양식 전체에 미친 영향과 이로 인한 사치풍조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는 저자의 독창적 시각이 흥미있게 펼쳐진다.

  이 책의 저자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Zombart, 1863~1941)는 독일의 경제학자이며 사회학자로,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자본주의의 기원을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사치 풍조’로부터 왔으며, 이 사치는 바로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원래 이 책은 『사랑, 사치와 자본주의』라고 제목을 붙였어야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책의 목표는 유럽 사회가 십자군전쟁 이후 남녀 관계가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지배계급의 생활양식 전체가 새롭게 형성되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근대적인 경제체제의 형성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p.5) 좀바르트가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발생 원인에 대한 논리와 함께 이것들이 시사하는 것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 사랑과 사치, 그리고 자본주의의 탄생


  2.1. 새로운 사회

  궁정생활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닌 것은 바로 프랑스에서의 근대적 궁정의 형성이었다. 프랑스 궁정의 창시자는 프랑수아 1세로 그는 여성을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함으로써 궁정을 만들었다. 또한 궁전과 축제에 형식의 화려함을 주어, 여자와 함께 음모, 정사, 사치가 발생하였다. 좀바르트는 두 명의 기록을 인용하여 당시 귀족들이 놀이와 낭비, 몸치장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귀부인들이 의상, 예절, 유행, 장식, 기호 등을 만들어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세 초기의 부는 오로지 ‘토지소유’였으나 13~14세기 이후 해외무역이 활발해지고 광산 등을 개발하면서 화폐재산이 급속히 증가하였다. 이후 무역과 약탈, 노예제도를 통해 유럽 여러 나라들은 부를 형성했고, 16~17세기에 들어서야 금융업이 활성화되어 비로소 ‘시민’에게도 부가 형성될 수 있었다.

  여기서 부를 축적한(벼락부자가 된) 시민들은 (1) 공적을 세우거나 상응하는 돈을 바침으로써 귀족 칭호를 받거나, (2) 세습귀족과 관련이 있는 훈장이나 관직을 받은 경우, (3) 세습귀족의 토지를 획득한 경우 신분 상승이 행해질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일들처럼 결혼을 통해 세습귀족(오늘날에는 정치권력)은 돈을 얻고, 벼락부자들은 명예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세습귀족들도 처음에는 상인 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던 평민들과의 결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영국의 가장 하위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젠트리에게 있어서 계급의 경계를 그 아래 계층과 관련해서 전혀 정할 수 없었는데, 이것은 영국에서 귀족의 일원이 되는가 아닌가는 말하자면 경제사정의 변화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암시하였다(p.26).


  2.2. 대도시

  16세기 이후 유럽 각지에서 도시 거주자의 급속한 증가로 “대도시”가 탄생했다. 따라서 도시가 무분별하게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여러 칙령들이 만들어졌으나, 이는 아무 성과도 없었다. 오히려 도시는 더 강력하게 성장하였다. 저자는 칸틸롱(Cantillon)의 연구를 언급하며 도시의 작은 집들은 큰 집(귀족, 정부 등)의 지출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논리를 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중농주의자들에 의해 명확하게 발전되었다. 도시는 생산보다는 소비의 역할을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따라서 국가수입의 상당액이 (대)도시에서 소비된다면 사치문제가 대도시문제와 결합될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베카리아(Beccaria)에 의하면 귀족들이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짓고 노동계급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입법 기관 근처에 모여 살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향락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권력도 확대하였다.


  2.3. 사랑의 세속화

  좀바르트의 독특한 논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근대자본주의 발생에 있어서 중세부터 18세기까지의 남녀관계의 변화가 가장 중요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중세에는 세속적인 사랑의 감정이 종교의 영향으로 초세속적인 목적으로 그 방향이 돌려졌거나, 사랑이 제도적으로 구속되어 결혼은 신이 원하고 축복한 제도로서 인정되었다. 따라서 “신이 축성하지 않거나 제도적으로 구속되지 않은 성애는 모두 ‘죄’의 낙인이 찍혔다.”(p.74) 그러나 11세기 이후 “연가”를 부르는 음유시인들이 등장하였으며, 14세기 말기가 되어서는 특히 예술 분야에서 여체의 내적인 아름다움이 발견되고 감각적인 사랑을 맛보게 된다. 시인들은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라 하며,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고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 시기에는 여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을,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生)는 것을 의미하였다.

  13세기 이후 나타난 여성과 사랑에 대한 쾌락주의적이고 미학적인 견해는 당시 종교적·제도적 속박과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을 가져온다. 사랑의 본능은 그 성질상 비법률적인 것이라 결혼과 같은 제도에 의해서 속박당하지 않는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특성이 사회적인 제도에 의해서 그 매력이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랑과 결혼은 무관하며, 오히려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혼에 있어서는 인척관계와 재산이 더 중요하며 결혼은 자신만큼이나 자신의 가족과 자손을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아름다움과 사랑의 노력을 결합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결혼과 사랑을 분리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현대에만 나타난 유일한 특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유연애의 관념은 혼외의 성관계가 부부간의 성관계를 보충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게 하였다. 따라서 간통이 사실상 인정되고, 대도시에서는 매춘이 성행하게 되었다. 여기서 좀바르트가 강조하는 것은 ‘비합법적인 사랑’이 만연됨에 따라 ‘정숙한 여성’과 ‘창녀’ 사이에 새로운 계층의 여성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들을 통해서 자유로운 기교가 된 사랑이 사랑을 직업으로 삼는 자들에게 위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궁정에서는 궁녀들이 하나둘씩 군주로부터 시작해서 궁정인의 애첩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고급창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을 “애첩경제”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애첩들은 공식적으로 왕의 연인들로 인정받아 ‘귀부인’으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상류사회를 동경하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이러한 위법행위의 정당화는 궁정 밖에서의 자유로운 연애관계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궁정과는 관련이 없는 고급창녀가 출현하였다.

  마찬가지로 17, 18세기에는 런던과 파리에서 근대적인 창녀(이 책에서의 창녀의 의미는 직업적으로 성을 매매하는 것 보다는 혼외 관계에서의 첩 혹은 애인의 의미가 더 강하다)가 대대적으로 나타났다. '아내 이외의 우아한 여성'을 두는 풍습이 일반화됨에 따라 궁정의 귀족들뿐만 아니라 신흥 부자들에게서도 첩을 두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간통에 의해서 초래되는 비용이 상당한 재산가의 생활비 중에서도 최대의 액수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고급창녀들이 사회적으로 대두됨에 따라 품위 있고 신분이 높은 여성들의 취향도 이들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들도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애첩들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2.4 사치의 전개

  좀바르트에 의하면 사치는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모든 소비를 뜻하며, 필요한 것은 인간의 생리적인 필요나 문화적인 필요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사치는 양적으로 행해질 수도 있으며, 질적으로 행해질 수도 있다. 질적인 사치라는 것은 더 좋은 질의 재화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로부터 파생되는 것이 바로 사치품이다.

  모든 개인적인 사치는 우선 오감을 통한 쾌락을 감각적으로 즐기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것들은 어떤 종류의 일용품 속에서 표현되며, 이렇게 우리의 감각을 자극시키는 수단들을 세련화하고 그 수를 늘리고 싶은 것은 결국 우리의 성생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저자는 그 이유를 감각의 즐거움과 성애는 결국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부가 축적되고 성생활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것이면 사치도 유행하고, 성생활이 위축되는 곳에서는 오히려 재화를 쓰는 데 이용하지 않고 축적하는데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사치가 일단 존재하면 사치를 더욱 증대시키는 수많은 동기들이 활기를 띠게 된다. 즉 남보다 뛰어나려고 하는 충동이 중요한 요인으로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치는 화려한 생활과 애첩들을 위해서 궁정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궁정에서 행해진 사치는 궁정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점차 퍼졌다. 좀바르트는 다음으로 사치수요를 양적으로 확대시키는 데 신흥부자들의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그는 사치를 만들어내는 두 가지 원동력으로 명예욕과 감각의 즐거움을 들고 있다. 게다가 평민의 출세와 사치품수요의 확대 간의 밀접한 관계는 유럽 국가들의 ‘번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14, 15세기의 이탈리아, 15, 16세기의 독일, 17세기의 스페인과 네덜란드, 18세기의 프랑스와 영국을 들 수 있다. 근대사회에 있어서 부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으며 막대한 재산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 외에는 자신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가진 벼락부자들이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세계관을 세습귀족들에게 전하게 된 것이다. 세습귀족들은 사치지출에 있어 평민출신 벼락부자들과 경쟁하고 싶은 충동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세습귀족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대자본가와 결혼으로 인척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치의 주체가 신흥부자이더라도 당시는 귀족의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고, 따라서 사치의 지향이나 성질은 귀족적이었다. 당시의 사치는 옷사치 등 그 방향을 귀족이 결정하였으며, 그것이 어디에서나 고귀한 품위를 나타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바르트는 사치의 일반적인 발전경향을 실내화, 물화, 감각화와 섬세화, 집중화로 구분한다. 중세의 사치가 대부분 공공적이었던데 반해, 17세기 이후에는 사치가 사적인 것이 되어 가정으로 옮겨졌다. 또한 하인이 많은 것에 대한 강조는 사치의 귀족적인 기원을 드러내지만, ‘애첩’을 위해서는 하인을 많이 거느려 물적 재화를 많이 투입하는 것이 별로 이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성격(물화)이 약화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적인 의미에서 임금노동자의 발생을 촉진시켰고, 따라서 사치욕구의 물질화는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진다. 한편 ‘애첩’과 관련하여 사치가 예술과 같은 어떤 이상적인 삶의 가치에서 멀어져 본능에 점점 더 예속되게 된다. 이러한 사치의 감각화와 세련화 경향을 저자는 ‘귀여운 여인의 승리’라고 일컫고 있다. 사치는 이전의 주기적인 행사에서 벗어나 상시적이고 일상적인 제도가 되었다. 따라서 사치품의 소비가 빨라지고 사치품이 보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요구되었다.


  2.5 사치에서의 자본주의의 탄생

  당시 사람들은 대체로 사치가 자본주의적인 경제 형태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각국의 정부들도 사치에 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당시 여러 학자들은 사치가 ‘악덕’으로 기능할 수 있는 양면성을 인정하지만, 그 ‘필요성’은 확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은 사치보다는 ‘착실하고 분수에 만족하는 검소한 부르주아’의 윤리적 열정을 가지고 근대자본주의에 접근하였으며, 오히려 역사학파의 ‘판로와 공간적인 확대, 해외시장과 수출이 자본주의적인 조직을 필요로 하였다’라는 견해가 널리 인정받았다. 좀바르트는 주문생산과 원거리 판매를 살펴보면 수공업과 자본주의의 대조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며 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좀바르트에 의하면 초기 자본주의산업의 매우 많은 부분은 사치라는 우회로를 통해 발생하였다. 사치품이 되는 최종 소비재까지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관련 산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명백한 사치산업은 특히 일찍부터 자본주의에 속하였고, 동종의 공업군에서는 사치품을 만들어내는 공업부문이 일반적으로 다른 부문보다 먼저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는 “판로의 지리적인 확대 때문에 자본주의는 산업 활동을 지배하게 되었다”라는 지배적인 견해에 맞서, “강력한 사치소비의 형성이 산업생산의 조직에 대해서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p.272). 대부분의 경우 사치품은 먼 곳에서 얻지 않으면 안 되는 비싼 원료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보다 부유하며 상인기질이 있는 사람에게 이익이 있었다. 또한 사치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더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자본력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했다. 또한 사치품의 판매는 경기변동과 유행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경기의 변동을 견디는 데에는 수공업보다 자본주의적인 조직이 훨씬 유리하였다. 마지막으로, 대량판매의 가능성이 있는 상품의 판매는 대부분의 경우 훨씬 나중에 가서야 나타났기 때문에, 재산가에게는 사치산업에의 투자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는 것이다.




3. 나가며

  베르너 좀바르트의 “사치와 자본주의”는 성, 사랑, 연애(특히 비합법적인)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사치의 경제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사적 의미까지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은 생산을 중시하는 주류 사회과학자들로부터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는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좀바르트는 사치에 대한 어떠한 가치평가를 내리지 않았기 이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있다. 한편 프로테스탄티즘의 검약정신이 자본축적을 용이하게 하여 근대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하였다는 논리를 편 베버와 비교하여 보면, 좀바르트의 주장을 더욱 흥미롭게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두 학자 모두 윤리나 정신(상부구조)이 경제적 구조(하부구조)의 발전을 촉진시킨 사례로서 맑스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다.

  아쉬웠던 점은, 좀바르트의 조사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주체로 보고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만 서술해 나간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료, 남아있는 문헌이 주로 남성에 의해 쓰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성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귀여운 여성의 승리”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해도 그것은 여성을 대상화시켜서 본 것일 뿐 실제로 여성들의 지위나 권력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실제로 당시 여성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행위를 펼쳐 나갔는지 같이 살펴보았다면 더 좋은 연구가 되었을 것이다.

  한편 현대의 문제로 돌아오면, 이 책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유럽은 제3세계를 착취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였고, 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것도 ‘사치’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그러면서 저개발 국가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은 자유무역으로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라는 신화의 뒤편에는 의도적으로 감추어진, 그래서 사라져버린 경제개발의 역사가 있다. 선진국들, 특히 영국과 미국은 국가의 강력한 시장 개입과 보호주의를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서고는, 후진국들이 따라잡지 못하도록 자유무역과 시장 개입 금지를 강요하는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유현산,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인가”, 한겨레21, 655호). 자신은 이미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꼬마와 본격적으로 결판을 내보자고 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따라서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유럽 선진국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유럽 중심의 세계는 그들의 욕망을 위해 ‘아직도’ 저개발국들을 착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 역사를 생각한다

  한 때 ‘미시사’적인 관점에서 쓰인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주로 ‘~의 역사’라는 제목을 달고 말이다. 우리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에서 배운 역사는 오로지 거대한 사건들의 연대기적 나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교과서는 주로 정치, 경제, 사회의 세 분류로 나뉘어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민중’들이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교과서에서 민중의 역사 혹은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확인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국왕을 중심으로, (주로) 남성이 이끌어 온 전쟁을 중심으로, 또한 그들의 정책을 바탕으로 서술된 역사만을 배웠다. 이런 거대 담론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만을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미시사와 대응한다는 관점에서 거시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미시사는 특정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작은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나가 결국에는 커다란 역사에 대한 근거로 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과정은 방대한 자료를 필요로 하고 역사가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깰 수 있는 새로운 시도이다.

  미시사와 같은 역사 서술의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주로 미시사와 신문화사가 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정치사 중심이었던 역사 서술이 사회사, 경제사 위주로 변모하면서 보다 역사학은 점차 그 지평을 넓혀 나갈 수 있었다. 이후 나타난 미시사나 신문화사는 역사 서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시사나 신문화사에서는 역사학이라고 해서 역사학만의 독특한 방법론을 사용해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세밀하게 자료를 추적하고 행간을 읽어내는 방법론을 통해 역사적 상상력을 추구한다. 역사학에서 ‘상상력’을 강조하게 됨에 따라 미시사나 신문화사에서는 문학과도 일정한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 대표작으로 『고양이 대학살』, 『마르탱 게르의 귀향』, 『치즈와 구더기』 등이 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기회로 삼아 예전에 레포트를 위해서 부분적으로만 읽었던 책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2. 치즈와 구더기: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치즈와 구더기: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상세보기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주인공 메노키오가 이단혐의로 피소돼 화형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사고를 마치 추리소설을 쓰듯 생생한 필치로 재현하고 있는 역사학자의 저서. 이탈리아 동북부 프리올라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메노키오는 예수의 신성과 마리아의 처녀성,교황과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등 중세 사회에서 이단적인 자신의 생각을 마을에서 이야기 하고 다니다 밀고되는데...

  『치즈와 구더기』는 16세기 한 작은 마을에 살았던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과 세계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인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각종 기록들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16세기 몬테네알레의 메노키오라는 인물을 현실감 있게 복원해 낸다. 도메니코 스칸델라는 이탈리아 동북부 프리울리 지방의 조그만 마을에서 살며 방앗간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상 그는 마을 촌장격인 지위였고 글도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는 ‘메노키오’라는 별칭으로 불리었고, 이 인물은 당대의 가톨릭적인 세계관에 배치되는 이단적인 우주관과 세계관을 주장하다 1583년 이단 혐의로 피소되었다. 이후 여러 번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1599년에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교회 당국이 메노키오를 이단이라 판단했던 것은 그의 주장 때문이다. 그의 주장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자연발생적 우주생성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라는 종교적 교리와 신앙생활에 대한 매우 개방적인 태도이다.

  메노키오는 마치 치즈가 숙성하는 과정에서 구더기가 나타나듯이, 태초에 모든 생명체들이 생성된 것도 이렇게 우유처럼 뒤엉킨 물질 덩어리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인 ‘치즈와 구더기’는 메노키오의 독창적인 천지창조설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는 ‘혼돈’의 우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들이 신의 개입에 의존하지 않고 ‘무질서하고 거대한’ 물질로부터 탄생하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그의 세계관은 “유물론적이며 과학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p.193)

  또한 예수는 단지 위대한 예언자일 뿐이라고 말했으며, 자기가 터키인이 아닌 기독교인인 것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지 다른 종교가 틀렸기 때문은 아니고, 성사는 사제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종교적 관용을 역설하여, 교리로부터 자유로운 단순화된 종교의 이름으로 모든 종교의 신앙이 동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과격한 주장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성모마리아가 처녀일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식인 풍습 등 문화 상대주의의 충격을 받고 내세를 부정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메노키오는 환경과 경제적 기반이 다른 경우 다른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비판자들은 이러한 메노키오의 주장들이 당시의 개혁적 지식층으로부터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즈부르그는 그 재판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메노키오가 읽은 책들의 내용을 그의 주장과 하나하나 대조한 끝에, 메노키오의 이야기가 엘리트 문화로부터 그냥 배운 것이 아니라 분명히 그 나름의 고유한 기반 위에서 스스로 가치를 ‘생산’해 온 민중문화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또한 그 물질주의적 우주생성론의 뿌리를 고대 인도의 베다 전통과 고대의 우랄 알타이계 샤머니즘에서 찾아낸다. 메노키오는 읽은 책들을 그의 방식대로 독창적으로 재구성했다. 이는 “지식인들의 논점과 민중들의 논점이 접목된 것”(p.178)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메노키오는 심문 과정에서 시종 당당하며 어쩌면 교만하기까지 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는 독창적이며, 인간은 생각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판단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이 어디서 왔으며 누구에게 배웠는가라는 물음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고, 다른 이단 종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 역시 메노키오가 루터파나 재침례파와 유사성은 있으나 그들의 입장을 따른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다른 맥락에서 교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메노키오에게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평등성을 강조하게 된 근대성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권력자들과 가난한 자들의 대립관계, 즉 계급갈등을 상정하고 있었으며, “교황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권력, 즉 좀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p.102)라고까지 주장한다. 진즈부르그는 메노키오가 기존의 계급 질서를 비난한 것은 단지 억압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종교적인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다.



3. 작은 것들의 역사, 민중의 역사를 발견하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시사 방법론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진즈부르그는 기독교적 우주관과 합리론적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민중의 능동적인 문화 생산과 전승’이라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켰다. 즉, 메노키오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민중들 나름대로의 문화가 그 배후에 존재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에 문화에 대해 수동적 수용자의 위치에 있던 민중의 위치를 능동적 생산자로 상승시키는 데 공헌하였다. 메노키오는 미치광이로 취급받아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근대의 여명을 감지한 인물이었다. 그와 같은 인물이 등장할 수 있던 것에는 종교 개혁과 인쇄술의 보급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러한 변동은 문화를 특권으로 간주하는 관념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p.197)

  『치즈와 구더기』의 메노키오는 방앗간 주인으로, 사실상 민중 문화를 대표하는 농민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미시사의 사료가 거대하거나 대표성을 갖는 정형이나 전형이 아니듯이, 메노키오 역시 틈새와 간극의 인물로서, 상층 문화와 민중 문화가 교류하는 경계에 놓인 인물이다. 이 경계 사이로 드러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둘러싼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역사적 구조체를 추적해나가는 것이 미시사의 특징이자, 진즈부르그의 실마리 찾기 방식인 것이다.”(p.57) 그를 그 시대의 ‘전형적인’ 농부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던 시대의 문화와 계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기록들의 거의 대부분이 지배계층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을 고려한다면, 단지 부분적이고 왜곡된 기록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다른 것의 잠재된 가능성(민중 문화)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시사 역시 정치∙사회사 등 거시사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러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의 역사는 너무나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에서만 연구되었기 때문에, 그에 가려진 역사들이 다시금 제자리를 찾게 해주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시사적인 연구 결과를 거시사와 비교한다면 때 더 생생한 당시의 삶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거시사와 미시사 혹은 사회사와 신문화사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 역할을 한다. (실제로 『치즈와 구더기』의 7장 “고색창연한 사회”에서는 당시 프리울리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어, 당시 민중들과 메노키오의 사상∙행적에 대한 추론을 충분히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한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당시 생활상이나 교육 수준 등을 설명해주어 그 시대의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결국 ‘다양한 관점에서의 역사보기’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위안의 철학

Posted 2008. 1. 25. 23:30 by surfysea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몽테뉴 (p.5)


처음 맞이한 대학 생활에 대한 흥분과 실망이 뒤섞여,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대학 1학년 어느 날. 나는 한 일간지 인터넷 담당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른바 알바생 '막내'이다보니 저녁에 신문 초판이 나오면 신문 뭉치를 1층에 내려가서 가져와야 했다. 이 신문을 사무실의 각 직원들에게 배분하는 것 까지 마치고 이제 본연의 업무로 돌아오면, 웹에 신문기사와 이미지를 포스팅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종이신문의 이미지와 대조하여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북섹션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날 일이 끝나자마자 근처 서점에 들러 구입한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새 책을 소중하게 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 나는 정신없이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이 젊은 철학자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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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1969년생.


어느새 나는 군대에 다녀오고, 정신없는 복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공서적을 사려고 인터넷서점에서 이것저것 보던 중,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정명진 역, 생각의나무, 2005)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말이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전공서적과 같이 주문했으나, 학업의 압박(정확하게 말하면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때문에 책은 한참을 책꽂이에만 꽂혀 있다가 이제야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사실은 대학 졸업반임에도 일이 뭔가 계획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나의 현실에, 알랭 드 보통이 나에게 어떤 암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는 것이 맞겠다. 마치 대학 1학년 때의 어떤 날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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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인터넷교보문고


surfysea의 두 번째 포스팅 100(철학)편에서 소개하는 이 책은 예전에 "드 보통의 삶의 철학산책"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이건 개정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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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리패키징 앨범을 자주 내서
초기에 앨범을 구입한 팬들을
슬프게 하는 가수도 있다.


이 책은 서양 철학 전반을 훑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저자가 '위안의 철학'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몇 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며 에세이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1. 소크라테스: 인기 없음에 대한 위안
  2. 에피쿠로스: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3. 세네카: 좌절에 대한 위안
  4. 몽테뉴: 부적절한 존재에 대한 위안
  5. 쇼펜하우어: 상심한 마음을 위한 위안
  6. 니체: 곤경에 대한 위안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좌절을 설명하는 세네카의 사전" 중 "불공평" 부분이다. 드 보통은 세네카(우리가 윤리시간에 배웠던 스토아학파의 일원이다)의 저작 전편에서 한 가지 관념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은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한데다 또 납득할 수 있는 좌절에 봉착한 경우에는 잘 참아 넘기는 반면, 예상하지 못한 좌절을 겪으면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철학의 임무가 우리의 바람이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재앙으로 고통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리둥절해하며 그 사건을 정의의 도식으로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부조리하게 비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결국엔 나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 곳에 자리잡는 한편, 자신은 진정으로 말하건대 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의의 집행이 부른 대실패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낀다.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정의롭다는 줄기찬 믿음은 이 세상에는 불공평이 있어왔다는 바로 그 불만 속에 암시되어 있다. (p.148)


저자는 인용 부분과 같은 세네카의 도식을 "운명의 여신은 허리케인과 같은 도덕적 무분별함으로 해(害)를 입힌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센스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누구든 적어도 한 두 꼭지 이상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문이 고도로 전문화된 근대에, 철학은 여러 분과학문들을 탄생시켰지만 막상 자신의 역할은 한없이 축소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 초년생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설치던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책 만큼 철학이라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위안을 주고 피부에 와 닿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전에 얼마간 이론적인 공부(그래봐야 초보적인 수준이지만)를 했던 것이 이러한 논의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현실의 삶과 맞닿아있어야 그 본래의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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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뉴시스


문득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진부한 속담이 새삼 떠올랐다. 어떤 것에 대해서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일수록 배운 것을 써먹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은 의심(소크라테스적으로 "자신아 무지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자기의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고들 한다. 그러니 나 같은 얼치기일수록, 자기주장만 강해지고 고집만 세지는 것이다. 이는 일면의 이론으로 사람을 재단하려 해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경계짓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같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사실은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절대자'가 된 양 행동한다.

이런 사람들이 치닫는 극단적인 결말은 "연애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왜냐면 연애와 같은 관계에서 '교조적인 정치적 올바름'이 항상 정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러한 가치의 발현은 이론의 틀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관계 속에 깊이 관여하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주장만 하는 것은, 원치 않는 훈수로만 들릴 따름이다.


서평 및 칼럼 팀블로그 "책, 계"의 첫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surfysea가 이번에 000(총류)에서 고른 책은 바로 "코드 한 줄 없는 IT 이야기(김국현/성안당/200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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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인터넷교보문고


저는 인문사회과학 전공자이지만, 우연히 이 블로그를 찾아주셨을 블로거분들처럼 IT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새 말하는 '가로지르기'를 꿈꾸지만 역량 부족 때문에 허덕이는 녀석이지요. 인문사회/자연과학 양쪽 어디에도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컨대 물리학에도 철학에도 소질은 없지만 '철학을 위한 물리학' 강좌는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렸을때 부터 PC잡지를 탐독하고, 프로그래밍을 해 봤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봤다고 해도, 저는 전공자도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IT업계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어중간한 사람이 IT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책이 좋을 지 고민하다 김국현님의 이 책을 골랐습니다. 다만, 2004년에 출판된 책이라 IT업계의 빠른 변화 속도를 고려해서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비슷한 목적을 가진 책으로는, 프로그래밍의 기본인 알고리즘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는 임백준님의 누워서 읽는 알고리즘(누워서 읽어도 무리없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단, 책의 1/2 부분까지는 그렇죠;)과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해 다룬 조엘 온 소프트웨어 등이 있지요. 이건 시즌 2도 나왔더군요.



먼저,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이해도를 평가해보면, 평이한 소설책을 볼 때 이해도를 10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경우 6 정도를 이해한 것 같습니다. 김국현님은 글을 쉽게 쓰시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분야가 분야인 만큼 해당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있지 않으면 사실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의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웹서비스"입니다. 결국 이종교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e비즈니스의 미래의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이를 인간 잡무를 덜어 줄 "사무직 로봇"의 출현이라고 표현합니다.) 각기 다른 플랫폼 간의 데이터 교환이 이루어지려면, 표준화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따라서 데이터 전송을 위한 각종 규약과 데이터를 구조화하교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XML의 중요성이 커지게 됩니다.

웹서비스를 부연설명한다면, 사람과 기계가 아니라 기계끼리의 통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각 쇼핑몰에서 상품에 대한 메타데이터(가격, 모델명, 색상, 사양 등)를 표준화하고,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이러한 정보를 자동으로 긁어와서 소비자에게 적합한 형태로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이는 훌륭한 웹서비스가 됩니다. 물론 현재는 공급자들이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가격을 '직접 입력'하거나,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여러 사이트의 상이한 양식을 긁어와서 '해석한 후' 공통되는 항목 일부만 보여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죠.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는 가장 기초적인 활용 방식에 불과합니다. 최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맨틱 웹도 "기계 간의 의사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상통합니다. 기계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짐에 따라 거래를 위한 정보비용이 급속도로 낮아지게 됩니다.

앞으로의 B2B는 한번 거래를 튼 기업과 투자가 아까워서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쿨하게' 거래를 튼 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싸늘하게' 빠지는 비즈니스를 지향해 갈 것입니다. 플러그 앤 플레이 식으로 협업이 가능해지기에 이러한 이상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p.197)

즉, 기업의 비즈니스 방식이 '밀결합(tight coupling)에서 소결합으로(loosely coupling)' 바뀌게 됩니다. 그룹 계열사 중심의 내부 거래에서 기업 내부 프로세스를 분절화해 필요시에는 아웃소싱을 마다하지 않는 쪽으로 변화한다는 것이죠. 저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맞춤복 보다는 명품 기성복의 결합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다른 플랫폼이라도 서비스를 통합할 수 있는 기반(웹서비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상호 관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의 자본주의도 유사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일본이나 독일식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영미식에 가까워지고 있죠. 전에는 '유기적인 기업집단', '장기적 관계', '연공서열적 문화'였다면, 현재는 '아웃소싱 등 기업의 경량화', '단기적 거래', '성과중심의 문화'로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사업 파트너나 고용한 사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설득하고 협상해서 어떻게든 끌고 나가기 보다는, 단기간 계약하고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그냥 버리는 것입니다.



(애플, 구글, 자바에 우호적인) 블로고스피어의 분위기와는 달리 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닷넷과 썬/IBM을 중심으로 한 자바 진영에 대해 비교적 균형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저술할 당시 IBM에서 근무하던 김국현님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로 옮겨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유비쿼터스에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e-코리아를 만들 때처럼 u-코리아를 이루는 것에도 관 주도 기획이 활약할 것을 기대한다고 한 것입니다. 책의 한 꼭지에서는 '정치의 시대'는 끝이 나고, '경제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주장한 저자인데 말이죠. 심지어 어떤 기술이든 비즈니스적이지 않으면 도태되기만 할 뿐이라고 언급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IT 흐름은 각 주체들이 '의도한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튀어나와 왕좌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언급들은 저자가 IT에서의 다양한 실험과 시도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책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의 '경제의 시대'내지는 '비즈니스적'이라는 의미는 시장주의적이라기 보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술은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애자일 운동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IT 방법론이라기 보다는 철학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드 컴퓨팅에 대해서는 실현이 어려운 꿈같은 이야기로만 치부하지 말고, 미리 비즈니스적 가치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혁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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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검색결과에 위키백과가 포함된 모습


메인프레임의 시대가 가고 클라이언트/서버 시대에 이어 웹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 웹도 2.0이다 3.0이다 하며 또 다른 변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요? 블로고스피어에서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이버에서도 검색결과에 "위키백과"가 전면에 등장하는 묘한 조합을 목격하는 지금 이 순간에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