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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2.24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2

『한국교회의 역사』를 말한다

Posted 2008. 3. 6. 23:0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서정민 저,『한국교회의 역사』, 살림

. 한국기독교의 수용과 갈등
. 한국기독교의 전환과 모색
. 한국기독교의 저항과 굴절
. 한국기독교의 분열과 성장
. 한국기독교의 참여와 성숙


1. 프롤로그

  이따금씩 언론보도를 통해 한국 교회의 허물을 접한다. 물론 모든 한국교회를 질타하는 식은 아니고, 주로 대형교회가 도마에 오르곤 했던 기억이 남는다. 같은 맥락에서 얼마전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 후'는 세차례에 걸쳐 중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방송 역시 꽤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을 보면, 아직 병폐는 온존하나보다.
 
   일부 교회들의 반발은 어김없이 이어졌는데, 공박하고픈 심사가 반박할 여지보다 한참 앞서나가는 모양이다. 어느곳을 뒤져봐도 이들을 지지한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교회내부에서조차 진지한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를 높이는 마당에, 그 외부에서 우군을 찾기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들은 강했다. 'MBC민영화추진'이라니.

  한국에서 교회는 '권력'이다. 4명중 한 명꼴의 그 엄청난 신자수도 그렇지만, 이들은 이미 거대 조직으로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발을 걸치고 있다. 한 세기만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을, 또 그 만큼의 힘을 얻게 된 한국의 교회. 딱딱한 이름을 내걸었지만『한국교회의 역사』는 한국기독교의 지난 백여년사를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한국교회' 대체 넌 뭐니.


2. 민족과 프로테스탄트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갈등과 타협이 혼재한다. 가령, 혹자는 근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두고 전자의 일방적인 승리를 말하기도 하지만, 자본주의가 근대체제의 적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대립항을 녹여다가 제몸에 붙여낸 점이 한 몫을 차지한다. 갈등과 타협은 어디에서고 일방적이지 않다. 한국 민족공동체와 기독교의 만남은 일방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즉, 서구에 대한 경계가 날로 심해지던 19세기 말엽 조선에서, 카톨릭이 '반민족적' 성격에서 수난을 당한 측면이 갈등의 한 표상이었다면, 프로테스탄트가 이른바 카톨릭과의 '이체선언'(異體宣言)을 통해 그 차이를 부각시켰던 점은 타협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니까 프로테스탄트 기독교가 카톨릭보다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족공동체와의 관계맺음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데에 있다. 반민족의 혐의를 벗은 프로테스탄트는 비 서구국가(일본)의 침략이라는 조건아래 '서구세력에 의한 일본 견제'라는 차원에서 민족공동체와의 결합이 보다 쉬울 수 있었다. "이는 세계기독교 확장사에 있어서 유일한 경우"(19쪽)였는데, 서구제국주의가 침략한 제3세계보다 선교의 수용폭이 컸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달리 이를 방증하는 것은, 3.1운동과정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위치인데, 당시 교회는 '운동동력의 통로'이자 '운동이후의 수난감수'(24쪽)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민족교회로서의 의미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선교와 교세의 확장과정에서 모든 교회가 민족문제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오히려 몰역사적인 인식아래 지나치게 묵시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교파도 있었고, 일제의 강압이 심해질수록 앞장서서 신사참배를 조장하기도 했다. 일제 파시즘이 강화되었던 그 엄혹한 시기에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사실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할수도 있지만, 신사참배나 천황숭배에 앞장섰던 일부 교회는 종교신념체계가 철저히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종교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기에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더욱이 이 교회들은 한국 기독교회의 주류였다.

  일부 소수 기독교는 일제에 저항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철저한 신앙적 논리에 의해 저항주체로 떠올랐다. '민족'이 아니라 '신앙'이 운동력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저항이 민족의식의 발로로 표면화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한국기독교 저항자들의 동기는 순수한 신앙적 발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의해서는 한국 민족주의의 반일의 현상으로 다스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54쪽)

  이 대목에 특별히 시선이 가는 이유는, 이와 같은 순교적 저항이 해방 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민족의식으로 탈바꿈하지 않았나 하는 혐의 때문이다. 하나의 억측에 지나지 않지만, 신앙을 강조하는 보수 기독교가 한국교회의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에는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영향아래 높아진 기독교의 위상, 박정희정권을 거치면서 '민족'담론이 확대재생산 되었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순교적 저항과 민족적 저항의 치환에서 말이다.


3. 기독교의 부흥, 부흥한 교회

  교회의 본격적인 부흥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5년까지 이루어진 '복음화운동'이라 전해진다. 꽤 오랫동안 인구대비 5%정도에 머물러 있던 신자비율이 이 시기를 거치면서 25%로 뛰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비약적인 성장은 북에 있던 많은 신자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신자의 수가 직접적으로 증가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쟁의 후유증이 작용한 결과에 주목할만 하다. 전쟁은 주류 보수 기독교의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를 형성케 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기독교'(75쪽)로 재편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는 주류 기독교에게 결속을 다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전쟁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을 직접적으로 체험케 했던 점 역시 교회 부흥에 한 몫 했다.

  그런데 기독교의 부흥 이면에는 교파간의 분열이 있었다. 기독교 수용초기 선교사들이 구획을 나누면서 신학의 차이가 고착되었던 점에 이데올로기 문제가 더해지면서 첨예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전체의 몸집이 불어났다고 해서, 다양하게 나뉜 교파 모두가 동일한 성장을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교회의 부흥과 부항한 교회는 같은 모양새가 아니었던 것이다.  

 
4. 낮은 위치의 교회란..

"기독교가 사회의 기득권을 지니거나, 우대 혹은 존중받는 일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독교가 중요한 사회적 비판 기능을 상실하고 올바른 가치의지표나 도덕적 향도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86쪽)


  민족과의 관계설정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분열된 교회의 모습에서 정치적 영역과 교회의 관계는 읽힌다. 한국교회가 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은 여기에서 발생했나보다. 어차피 이렇게 교회가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라면 그 권력이 어떠한가를 묻는 것이 현명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교회가 사회의 기득권을 갖는 것이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교회 본연의 기능을 감당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시 책에 담긴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기독교는 오히려 낮은 자의 위치, 수난받는 자의 위치에서 역사적 역할을 감당할 때 본래의 정신에 맞는 기능을 다할 수 있었다."(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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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길 일이 있다보니 애초의 의도와는 많이 틀어져버렸네요.
또 되도록 말랑말랑하게 쓰고 싶었는데 이것도 역시나 대실패.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Posted 2008. 2. 24. 02:14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신승환, 2003, 살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http://blog.naver.com/selfportrait




. 왜 아직도 포스트모더니즘인가
. 포스트모더니즘의 계기
.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사적 이해
. 근대성 비판
.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함의
.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
. 탈형이상학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
. 우리의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1. 프롤로그



책 이미지를 찾던 중에 우연치않게 찾아낸 에피소드 한꼭지.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 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이 한 편으로 신선하고, 또 한 편으로는 컬트만큼 난해하면서(그 당시에는 그랬단 말임), 다른 한편으로는 잘 알아두면 있어보이는 그런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들먹이며 잘난 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말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뭐예요?"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말했다.

"기둥현대주의?"

요절복통.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분위기전환용 접대용 멘트라고 생각하며 실컷 웃었지만, 정말로 뜻을 잘 모르고 그 뜻을 간절히 알고 싶었던 나는 그 웃음소리가 비웃음으로 들렸다.

그로부터 2년 뒤, 우체국에서 방위를 마치고 나온 누군가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우체국의 현대화"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야기더군요. 비슷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겁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입니다. 아련한 기억에 담긴 기사 한 꼭지.
'포스트 조던을 찾아라' (쯤 인듯?)
솔직히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포스트?"

  시리얼과 조던의 관계를 엮으려는 부단한 억지부림은 금새 시들해졌습니다. 호랑이의 강인한 이미지와 조던의 얼굴이 교차되기도 했습니다만, 이내 캘로그와 포스트의 관계를 엮으려는 또다른 억지임을 알아채는데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포스트'에 대한 물음은 의외로 쉽게 풀렸습니다. 농구에는 골밑 부근에서 펼치는 '포스트 플레이'라는 용어가 있죠.
  '아! 이제는 센터의 시대라는 거구나. 조던의 후계자는 센터다!'
  나름 명쾌(?)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사족이 길었군요. 돌이켜보면, 그 즈음 '포스트'란, 있어보이는 무언가의 총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서구 지성사회의 모더니티 비판이 우리사회에 광풍을 불러온 까닭에 그러했을테지요. '포스트'와 조던은 아무래도 역시 막차 였을법한 지식인 사회의 유희 가깝다고 할까요? 당시의 '포스트조던'은 '포스트모던'이 낳은 문화현상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억지일지는 모르지만.
  언제가 한번쯤은 포스트모던의 막연함과 맞닥뜨린 적이 있으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물리적인 가벼움을 자랑하는 이 책은 정신적으로는 무거움을 안겨줍니다만, 유행으로서 불어닥친 포스트모던의 광풍이 물러간 지금, 철학자의 시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진정성을 담고 있는 이유를 풀어냅니다.
 


2.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획?

  '포스트 모던'은 참 생경스럽다. 우리말로 '탈근대'쯤으로 바뀌어 불리지만 역시 불분명하기에는 마찬가지다. 가령 누군가 "포스트 모던적이야" 라는 언사를 던질때, 이에 담겨진 의미를 명확하게 잡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듯 포스트 모던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는 통에 그렇다. 문화, 예술, 역사, 철학, 건축 등 포스트모더니즘이 다리를 뻗은 제반 분야는 매우 넓은데, 여기에는 일괄적으로 계보화 되어있지 않은 다양성이 동거한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는 복잡다단하게 나타난다. 이 넓고 포괄적인 문화현상을, 더불어 여러곳에 산개한 문화현상을 각론상으로 이해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에는 근대의 일원적인 기획을 넘어설 수 있는 넓은 시선이 담겨있다. 근대의 특징이 보편을 가장한 일방향성, 일원성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보편에 의해 거세된 다양성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말해 포스트모더니즘이 담지한 '다양성'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철학적 기획'인 셈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일원성을 넘어서는 다중 언어성으로 이해된다. 문화 현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자신의 철학적 기획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문제는 거듭 개별적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현상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기획에 대해 해명하는 작업이다." (15쪽)




3. 보편성을 넘어서는 다원성

  근대는 보편성과 그에 의한 공공성을 전제로 한다. 행위의 가부는 행위주체의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연산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사고에 기준이 되는 것이 공공성이다. 계몽주의 근대는 이러한 공공성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중세의 신성이 물러난 자리에 근대의 이성이 자리매김하면서, 인간의 합리적 이성은 행위의 기준을 보편성으로 재단하여 공공규율을 만들어 내었다. 공공규율은 태생적으로 사회의 공적가치를 실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공적가치는 어디에서건 개인의 소외를 낳기 마련이다. 애초에 규율이 기대고 있는 보편성에 함정이 숨어있다. 계몽주의 근대는 인간의 보편성을 내세웠을지언정, 실제로는 차별이 존재한다. 한 사회만을 본다면 중세적 신분처럼 공히 드러나지 않지만 마찬가지로 차별성을 갖는 섹슈얼리티 문제나 계층적 한계 등을, 외연을 확장하자면 계몽된 문명(유럽세계)을 유일한 보편성으로 여기는 차별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반드시 폭력이 수반한다. 이렇듯 보편성의 배면에는 차별이 혼재하는 이유로, 규율은 기득권의 도구로써 차별을 강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기획은 보편성이 타자를 배제하는 차별의 보편성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차별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설정에서 발생한다. 인간이성에 의한 주체설정은 자연스레 객체를 설정하기 마련인데, 여기서 주체와 타자의 도식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중심의 보편성, 주체/타자의 차별성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성'을 내세운다.  

"다원성은 보편적 인간 대신 개체로 존재하는 인간에게 각자에게 상응하는 존재의 원리와 자율성을 허용한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동일한 것. 전체에 얽매이지 않은 차이에 의미를 둠으로써 개인과 개체성, 부분 체계들의 존재공간을 보장한다." (61쪽)

  그렇지만, 역시 현실적인 생명력을 논한다면 포스트모던의 항변은 다소 맥이 빠진다. 인식의 차원에서 보편성을 넘어서는 다원성이 갖는 의미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만, 저자의 논의에서는 직접적인 현실성을 담보하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물론 조급할 필요는 없다. 근대성 비판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도,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당장의 해답을 찾으려는 강박증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 곧 근대의 기획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니다. 근대가 가진 역기능을 성찰, 보완하려는 시도로서, 우선적으로 보편주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더욱이 다원성의 기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나친 근대성 비판은 정신건강에 해롭다. 세상은 그럼에도, 잘 굴러간다.)  



4. 우리의 근대, 우리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근본적으로 지금, 이곳에 사는 인간의 '자기이해'와 타자에 대한 이해이며, 나아가 그에 대한 해석과 태도결정을 의미"(16쪽)한다. 그러니까 철학은 철학 그 자체를, 또한 철학을 하는 이를 포함한 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기획'에 대한 해명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묻는 것과 동일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껏 유행을 탔던 이유는 수입학문에 대한 학계의 서구추수주의에 있었다. 그 열기가 쉬이 식어버린 데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묻는 철학적 성찰이 부재했던 점이 주효했다. 따라서 지금의 문제는 우리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도마에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다만 그러기에 앞서 한 가지 주의점이 있다. 탈근대의 성찰은 근대의 기획과 어떤 관계맺음을 갖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전근대의 가치 위에 결과물만을 수용한 근대가 이식되면서 '착종된 근대'로 나아갔다. 우리의 근대가 이렇다면, 그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용되었는지를 먼저 살펴야만이 우리의 문제안에서 탈근대를 논의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서구의 근대와 우리의 근대가 갖는 이중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서구에서의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은 내적인 차원에서 해결되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이성에 대한 반발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꼴이나 다름없기 때문인가보다. 그래서 대안으로서 동양사상의 유기체적 사유에 관심을 갖는 모양이다. 우리의 근대를 성찰해야만 하는 까닭은 여기에도 있다.

(유학이나 노장학문과 연관된) "동아시아의 문화가 근본적으로 포스트모던적이며, 포스트모던은 동아시아의 사유체계와 일치한다는 식의 주장(은)... 논거의 깊이가 보잘것없고 공허하다...(중략) 문제는 동아시아의 철학에 대한 해석에 탈근대의 사유와 그에 다른 기획이 올바르게 담겨있는가에 달려있다. 포스트모던이 근본적으로 근대와의 관계설정에서 제기된 문제라면 포스트모던의 기획을 말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기획을 먼저 거론해야 한다. 문제는 '동아시아에 근대의 기획이 존재했는가'라는 명제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는데 있다. 그럼에도 어디에서도 그러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스트모던이 한창 유행할 때는 마치, 이성의 행진에 지친 서양이 드디어 동아시아의 총체적 세계관을 향해 다가오는 듯이 호들갑을 떨지 않았던가. 그것은 정말이지 희극적 포스트모던 논의의 극치이기도 하다." (67~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