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 상세보기
찰스 프레드 앨퍼드 지음 | 황금가지 펴냄
미국의 저명한 정신분석학자가 68명의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면담하면서 인간이 악에 굴복하는 이유를 밝힌 책. 이제껏 실체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악'의 실체를 평범한 일반인, 교도소에 복역 중인 흉악범, 엽기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 환자에 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규명하였다. 저자는 악의 개념과 범주에 대해 묻는 면담조사 결과 모든 이들의 대답에는 한결같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내포되어 있었음을 발견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어떤 재소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기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아 줄 사람이 필요했소. 난 잠시 동안이나마 누군가가 나를 느껴 주기를 바란 거요." (p.108)

악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 책의 원제(what evil means to us)이기도 한 이 오래되고 진부한 질문에 답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저자는 '악'에 관심있는 일반인들, 그리고 연쇄살인, 존속살해 등 '흉악범죄'의 재소자들과 함께 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 대부분은 '불행한' 것이 맞다. 공통적으로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고(물리적으로든, 냉담함과 돌보지 않음이라는 형태로든), 그 결과는 가학증이나 피해자에 대한 공감력의 상실, 그리고 범죄행위로 나타난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에 등장하는, 강도 행각 끝에 일가족을 엽총으로 살해한 페리 스미스는 그러한 불행한 살인자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 상세보기
트루먼 카포티 지음 | 시공사 펴냄
실제 범죄의 생생함을 문학으로 형상화 낸 논픽션 소설. 저널리즘의 방법론과 소설의 작법을 동시에 적용한 작품으로, 하나의 잔인한 범죄가 일어나게 된 사회의 모든 파장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재구성하였다. 1959년 캔자스 주 조용하고 작은 동네 홀컴에서 일가족 네 명이 엽총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작은 액수의 현금만이 사라졌을 뿐, 이 처참한 살인 사건의 원인은 쉽게 밝혀지지 않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듀이는 옆에 앉은 남자를 분노하며 쳐다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일종의 동정을 느꼈다. 페리 스미스는 일생 동안 한 번도 온실에서 보호받으며 살지 못했으며, 불쌍하고, 추하고 외로운 과정을 겪어 하나의 망상에서 다른 망상으로 옮겨 다닌 것이다. ...... 던츠가 스미스에게 물었다.
"그럼 다 더해서, 클러터 네서 돈을 얼마나 가져간 건가?"
"40에서 50달러 정도요."
-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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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스미스. AP/World Wide Photos


그러나 범죄자에 대한 증오만큼이나 연민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자는 유영철의 예를 들어, 범죄에 대한 엄벌주의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두 가지 상이한 입장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것이다. 악을 인간성 바깥으로 격리시켜야 하는, 근절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악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결코 뿌리뽑혀지지 않을) 악과 화해하는 능력, 내 안에서 선과 악을 통합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우리 자신, 친구들, 연인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 속에 있는 이러한 적의의 파괴성을 인식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이것이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는 악의 문제다. 그것은 '사람들이 왜 이러한가?'라는 문제뿐 아니라 '우리가 왜 이러한 사람들과 한 세상에서 살아가는가?'와 관련된 복잡한 질문이다. (p.267)
그러나 이 책은 정신분석의 이론을 바탕으로 씌어졌기 때문에 읽기가 만만치 않다. 나처럼 인상적인 부분을 표시해가며 잠언집처럼 읽어나가는 것도 하나의 독서법일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읽으면서 종종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범죄자들'의 심리상태와, '악'의 병후들에서 종종 나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상깊게 보았던 구절은 이곳에 표시해 두었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 영화 [카포티] 중
이러한 감정은 역설적으로 일종의 위안을 준다. 나의 마음이 비참하고 황폐하다는 것을 느끼는 만큼, '악'에 대한 공감 내지는 '악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는 것이니까. 나도 저러한 악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섬뜩하기도 하지만 나도 그의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는 느낌은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을 넘어서서 어떤 공감을 형성한다.

그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끔찍한 살인과 그 이상의 악행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지 가능한 것"(p.14)이 될 터이다. 두 권 모두 읽으면 기분은 우울해질 테지만 한 번쯤 읽어 보기를 권한다. 악에 대한 강박을 벗어버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P.S. 숭례문 화재의 범인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증오를 뿜어낼 것인가, 혹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를 멋대로 심판내리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일산 땅 보상금을 못 받은 분풀이로 범행을 저지르는 마음과 땅값이 뛰기 때문에 몰래 대운하를 지지하는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