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신이 인간을 신 자신에게서 분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 자체에 이러한 분리가 반영되어 신이 신 자신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하는 것이다. (p.26)
전형적인 무신론에서 신은 더 이상 자기를 믿지 않는 인간들에 대해서 죽는다. 반면에, 기독교에서 신은 신 자신에 대해서 죽는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로써 그리스도 자신이 기독교도가 범할 수 있는 궁극의 죄를 범한다. 믿음(Faith)이 흔들리는 죄. (p.27)
삼위일체의 교훈은 신이 신과 인간 사이의 균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 신이 바로 이 균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는 균열에 의해 인간과 분리된 피안의 신이 아니라, 균열 자체, 신을 신으로부터 분리하는 동시에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분리하는 균열이다.
(p.42)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의 핵심을 구제하는 것은 제도적 조직의 껍데기를 버리는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 종교적 형식을 버리거나 형식을 유지하며 본질을 잃거나 둘 중 하나다. 기독교를 기다리는 궁극적인 영웅적 행위가 이것이다. 기독교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독교를 희생해야 한다. 기독교가 출현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죽어야 했듯이. (p.277)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 몽테뉴 (p.5)
처음 맞이한 대학 생활에 대한 흥분과 실망이 뒤섞여,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대학 1학년 어느 날. 나는 한 일간지 인터넷 담당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른바 알바생 '막내'이다보니 저녁에 신문 초판이 나오면 신문 뭉치를 1층에 내려가서 가져와야 했다. 이 신문을 사무실의 각 직원들에게 배분하는 것 까지 마치고 이제 본연의 업무로 돌아오면, 웹에 신문기사와 이미지를 포스팅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종이신문의 이미지와 대조하여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북섹션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날 일이 끝나자마자 근처 서점에 들러 구입한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새 책을 소중하게 안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 나는 정신없이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이 젊은 철학자의 팬이 되었다.
알랭 드 보통, 1969년생.
어느새 나는 군대에 다녀오고, 정신없는 복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전공서적을 사려고 인터넷서점에서 이것저것 보던 중,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알랭 드 보통, 정명진 역, 생각의나무, 2005)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말이다.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전공서적과 같이 주문했으나, 학업의 압박(정확하게 말하면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 때문에 책은 한참을 책꽂이에만 꽂혀 있다가 이제야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사실은 대학 졸업반임에도 일이 뭔가 계획대로 풀려나가지 않는 나의 현실에, 알랭 드 보통이 나에게 어떤 암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는 것이 맞겠다. 마치 대학 1학년 때의 어떤 날처럼 말이다.
이미지 출처: 인터넷교보문고
유난히도 리패키징 앨범을 자주 내서
초기에 앨범을 구입한 팬들을
슬프게 하는 가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좌절을 설명하는 세네카의 사전" 중 "불공평" 부분이다. 드 보통은 세네카(우리가 윤리시간에 배웠던 스토아학파의 일원이다)의 저작 전편에서 한 가지 관념이 되풀이해서 나타남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은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한데다 또 납득할 수 있는 좌절에 봉착한 경우에는 잘 참아 넘기는 반면, 예상하지 못한 좌절을 겪으면 엄청난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철학의 임무가 우리의 바람이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 가능한 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을 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재앙으로 고통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은 어리둥절해하며 그 사건을 정의의 도식으로 풀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부조리하게 비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결국엔 나쁜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신이 벌을 받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이 마음 한 곳에 자리잡는 한편, 자신은 진정으로 말하건대 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정의의 집행이 부른 대실패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낀다.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정의롭다는 줄기찬 믿음은 이 세상에는 불공평이 있어왔다는 바로 그 불만 속에 암시되어 있다. (p.148)
저자는 인용 부분과 같은 세네카의 도식을 "운명의 여신은 허리케인과 같은 도덕적 무분별함으로 해(害)를 입힌다"라고 한마디로 정리하는 센스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누구든 적어도 한 두 꼭지 이상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문이 고도로 전문화된 근대에, 철학은 여러 분과학문들을 탄생시켰지만 막상 자신의 역할은 한없이 축소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 초년생 때 아무것도 모르면서 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설치던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책 만큼 철학이라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위안을 주고 피부에 와 닿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론 전에 얼마간 이론적인 공부(그래봐야 초보적인 수준이지만)를 했던 것이 이러한 논의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결국 철학이라는 것은 현실의 삶과 맞닿아있어야 그 본래의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 뉴시스